※황궁의 정문격인 남문 건례문建禮門(建礼門,kenreimon)
경도어소(교토고쇼)의 정전, 자신전(시신덴, 紫宸殿)
일본의 황궁, 현 교토 부의 한가운데 위치한 교토어소라고 불리는 유서깊은 일본의 황궁엔 놀랍게도 '천수백년 전 고려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현 일왕이 즉위했고 거주하는 일본의 황궁은 현재는 도쿄의 도쿠가와 막부가 사용한 거성인 에도 성이지만 100여년 전 메이지 일왕 이후로
도쿄로 이어하기 전에는 수천년간 일본국왕과 수도는 교토였습니다.
지금의 교토 어소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유명한 관광지 취급입니다만 헤이안 시대이후 현재의 교토 황궁이 정해진 뒤 지금까지 계속 사용되어어고 있는 일본역사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인 이곳에 뜻밖에도 [고려]에서 전해진 유산이 남아있다고 해서 찾아보았습니다.
[高麗縁, kouraiberi]
바로 '고려연', 일본어로는 '코-라이베리'라고하는 [무늬]가 그것입니다. (u는 단음화)
이 '코-라이베리'는 [고려의, 고려에서 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말 그대로 천년도 넘은 과거에 고려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무늬입니다.
그렇다면 [연縁]은 무엇일까요. 연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의 바닥재로 유명한 타타미たたみ(畳)의 마감장식을 뜻하는 말입니다.
현대도 일본어로 음독은 '엔えん', 훈독은 '후찌ふち'라고 읽으며 '가장자리', '액자틀'로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즉, 전통적으론 타타미의 가장자리 마감양식에 쓰인 무늬라는 의미가 되는 셈이지요.
'코-라이베리]의 여러 양식들, 자 보십시오, 천년 전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우리의 조상, [고대 맥족 고구려]의 조상님들이 썼던 문양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그야말로 이 무늬를 보고 환희와 그 어떤 Nostalgia를 느끼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 고대 조상들의 복식은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을 수놓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위의 삼국시대 사신이 그려진 것으로 유명한
'당염립본왕회도'라는 당나라 6세기 당대의 고구려 사신을 보아도 고대 고구려의 복식이 매우 화려했음을 알 수가 있지요.
p.s 수정, 백의민족이라고 찾아보니 3c 위서 동이전에 이미 고구려 부여인들은 흰 옷을 즐겨 입었다라는 기록이 있다는군요. 딱히 조선만
흰 옷을 숭상한 것은 아니고 흰 옷이 聖성스러운 색임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론 화려한 옷을 더 선호해서.. 그래서 이 구절은 삭제합니다.
백제 사신, 백제 사신도 고구려의 풍습과 습속과 같다는 여러 기록이 뒷바침하고 왕실이 고구려 계통이라 의복에 고구려처럼 문양을 수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으로 도래인들이 문물을 전파하면서 왜국으로 건너간 사신, 기술자 등이 입고 있던 의복에 왜인들이 영향을 받고, 의복도 삼한처럼
그들의 의복에 무늬를 새겨넣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최초로 밑거름을 놓은 삼한일통의 신라, 역시나 순백색이군요. 확실히 맥貊계 고구려 백제와
한韓계 신라는 다릅니다.
근데 사실 삼한통일할 때 그 삼한이 고,백,신을 가리키는 것도 있지만 원래 뜻은 '마한, 진한, 변한'등 한반도 남부의 한계 국가들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즉 고구려 백제는 맥계고, 그 옆의 동예나 저 멀리 부여같은 나라의 영토를 수복하지 못한 것은 확실히 신라의 통일에서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지요.
어쨌든 신라의 이것이 전해진건진 몰라도 유교식 복식인 단령, 철릭, 학창의 등과 합쳐져 오늘날의 '한민족'하면 떠오르는 선비의 하얀 복장 등에 영향을?
자 그럼 다시 문제의 '일본 황궁에 코-라이베리'를 보시겠습니다.
일본 교토 어소에는 국왕을 알현하기 전 신하들이 대기하는 방이 있는데, 각각의 방의 이름은
「토라노마虎の間」(공경대신의 방公卿の間)、
「츠루노마鶴の間」(전상가의 방殿上の間)、
「사쿠라노마桜の間」(제대부의 방諸大夫の間)
로 불렸으며 이 중 '토라노마와 츠루노마' 방의 사이에 깔린 다다미에 바로 이 '고려연(무늬)'가 사용된 것입니다. (위의 사진 오른쪽 아래)
사진엔 벚꽃의 방이 왼쪽에 와서 벚꽃의 방이 제일 지체높은 방처럼 보여지지만 그게 아니고 오른쪽 호랑이의 방, 토라노마의 방이 가장 높은
대신들이 일왕을 알현하기 전에 대기하는 방이었습니다. 이 방들은 각자 정해진 신분만이 사용할 수 있었으며
타타미의 마감재의 사용까지 철저히 구분되어있었지요.
각각의 '노마間' 설명
대강 설명을 드리자면 '大臣'은 일본의 가장 높은 관직명칭으로써 일본의 이 고위 관직은 일종의 공가公家(쿠게)가문 그룹인 5개의 섭관가인
고노에(近衛), 구조(九条), 니조(二条), 이치조(一条), 다카쓰카사(鷹司가문등이 독점하던 최고위 관직이었습니다.
이들 고셋케는 일본 최고의 명문귀족가문인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일파들입니다.
헤이안 시대부터 최고위 관리를 배출한 소수의 가문들이 이 관직을 독점하여 극히 일부 가문만이 저 방에 올라갈 수 있는 특권계층에 해당된 것입니다.
왕을 가장 가까이서 보필하는 관리들로서 조선으로치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종일~이품 삼정승 계층만이 바로 저 계급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그냥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경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현대의 일본 총리 [대신]도 이 관직에 해당됩니다. 바로 쇼리다이진總理大臣이지요. [아베 총리대신]
특히 후지와라 가문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명문사대부 귀족가문으로 천년넘게 이어진 엄청난 가문입니다.
그리고 다음 계급에 해당하는 '츠루노마' 학의 방은 후지와라, 구조 가문 등보다 한 단계 아래지만 이 방에 들어설 수 있는 가문도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특권층 중에 특권층들이었습니다.
한반도의 경우 중국처럼 시대가 흐르면서 소수의 특권계급들만이 아닌 시험(과거)쳐서 골고루 관직이 분배되는 노력이라도 보였다면
(물론 왕조말기로 갈수록 부패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일본은 그런거 없고 헤이안시대 귀족이 여전히 교토 황궁에서 천황을 배알하는 등
권력은 사무라이들에게 빼았겼지만 그 상징성만큼은 천년이 넘게 이어져왔습니다. 좋게보면 전통문화의 보존이지만 그만큼 극도로 보수적인
일본의 한 단면이 여기서도 나타나는 것 같지요. (일본은 아직도 팩스와 도장으로 업무를...)
간혹 무사로써 대신의 한 계급인 '내대신(나이다이진)', '좌대신(사다이진)', '우대신(우다이진)' 등 신하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세이타이[쇼군] 들이 나타나지만 그것은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센고쿠지다이의 권력의 최정점에 오른 극히 일부이고
대신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후지와라 가문 등 극소수 문벌귀족같은 공가公家만이 오를 수 있는 직위였습니다.
[바로 이 토라노마에 깔린 다다미의 마감을 장식하는 무늬가 '소문고려연小紋高麗緣'이라는 것인데 이 무늬는 일본 최고의 가문인 공경대신 급 이상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늬라는 뜻이 됩니다.]
다시 얘기를 돌려 호랑이의 방에 출입할 수 있는 셋칸케(섭관가) 대가문들 바로 아래의 '전상인殿上人' 계급이 바로 츠루노마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던 관리들입니다.
'전상인'이란 여러분께서도 들어보셨을 '당상인, 당상계급'이라는 계급인데, 여기서 당상이라는 것은 바로 전근대시절 국가의 운영을 맡는
조정에 참석할 수 있는 관리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즉 조선시대의 [의정부], 오늘날의 국무회의에 참석가능한 권한이 있는 고위관리들을 일컫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장,차관 이상이라는 아주 높은 관리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일본 전통 관직으로는 삼위三位 이상의 관리들이 당상직에 해당되지요.
[이 츠루노마에도 소문고려연小紋高麗緣'이라는 고구려에서 전래된 무늬를 쓸 수 있는 것이지요. 엄청난 희귀성을 가진 문양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아래 바닥이 더 잘 보이게 찍힌 사진들을 찾고 있는데 쉽지가 않네요. 대충 밑에 하얀 선이 보이시죠?
이렇듯 대,소문 고려연이 최고의 관직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제한을 두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고려의 이 문양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게 해주는 규칙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벚꽃의 방, 사쿠라노마'가 있는데, 여기는 그냥 빨간색으로 마감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지체높으신 공경대부들이 대기하는 토라노마에 깔린 바로 저 타타미의 마감재를 장식하는 문양이 바로 '고려에서부터 전해진 무늬'이므로
과연 고대 고구려에서 전해진 무늬를 일본인들이 얼마나 귀중한 문양으로 여겼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무려 황궁에]말입니다! 일본의 심장부 중의 심장부에...
「虎の間」(公卿の間)、次に「鶴の間」(殿上の間)、さらに西に「桜の間」(諸大夫の間)と各部屋が並んでいます。「虎の間」「鶴の間」には小紋高麗縁、「桜の間」には赤縁の畳が敷かれています。
참고자료출처: www.kariginu.jp/kikata/hoka.htm
사쿠라노마, 밑의 다다미 사이의 마감재가 '빨간 것'보이시죠? 더 잘 보이는 사진을 찾아보는데 쉽지가 않아서 일단 그나마 이것들로
소문고려연(고몬코라이베리)이 바로 맨 오른쪽의 저 문양입니다. 바로 저 문양이 일본 황궁의 일왕을 알현하기위해 대기하는 방의 장식에
쓰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맨 왼쪽과 가운데 무늬는 무엇인가? 그 설명도 해드리겠습니다.
맨 왼쪽의 운간연(운겐베리, うんげんべり繧繝縁)이라고 하는 무늬는 오직 천황과 황후, 왕후 등 황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늬였습니다.
저 무늬 속의 마름모 꼴이 그 유명한 타케다 신겐의 타케다 가문 등이 사용한 가몬으로도 유명하지요.
타케다 신겐의 타케다 가문도 바로 이 문양을 사용했는데 히시菱라고 불리는 마름풀의 무늬입니다.
이 무늬는 오직 황실과 황실과 관련된 가문만이 사용할 수 있었는데 타케다 씨가 황족의 일파인 세이와 겐지의 일족이라 그래서 아주 오래 전부터
쓸 수 있던, 써온 유서깊은 문양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바로 옆의 문양이 바로 [대문고려연, 다이몬코라이베리大紋高麗緣]입니다. 위의 호랑이의 방, 학의 방에 사용된 문양이 소문고려연이라고한다면
황궁에는 쓰이진 않았지만 이 대문 고려연도 매우 지체높은 가문들만이 사용할 수 있던 최고급 문양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설명에 보시면 친왕親王, 섭관攝關, 대신大臣이라는 한자가 쓰여있는데 저게 바로 [사용가능한 계급을 규정]한 것입니다.
이같은 엄격한 사용규제의 유래는 아주 오래되었는데, 다음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로마치 시대인 1420년, 恵命院宣守라고하는 인물이 쓴 『海人藻芥』(아마노 모쿠즈)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畳之事
帝王院繧繝縁也、神仏前半畳用繧繝縁、此外更不可用者也、
大紋高麗縁親王大臣用之、以下更不可用、大臣以下公卿小紋ノ高麗縁也、
僧中者僧正以下同、有職非職紫縁也、六位侍黄縁ナリ、
社寺諸社三綱等皆用黄縁云々、四位五位雲客用紫縁也
繧繝縁 ・・・天皇、神仏
大紋高麗縁・・・親王、大臣
小紋高麗縁・・・大臣以下の公卿
紫縁 ・・・四位五位の雲客
黄縁 ・・・六位以下
縁なし ・・・無位の者
이것을 해석하자면 운간연(운겐베리)는 제왕, 신불(불상 또는 법황法皇은퇴한 천황)의 무늬이므로 이외는 사용금지,
대문고려연은 친왕, 대신용으로써 이외에는 사용불가, 대신이하 공경들은 소문고려연을 사용가능
대충 이러한 의미가 되므로 최소한 1420년인 무로마치 시대에는 이러한 기준이 엄격히 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헤이안 시대 공경 귀족들의 다다미 사용이 활발했고 딱히 다른 규제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규칙은 무로마치 시대에 생긴 것으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찌됐건 고려문양이 아주 고급스러운 무늬로 옛 귀족들의 선호도가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겠지요. 아마 무로마치 시대에 다다미가 점차
널리 보급되면서 잡것?들과 구분되는 기준을 세울 필요성에 생긴 것으로 봐야지 싶습니다.
다다미의 마감재로 쓰일 '베리(緣,ベリ)'들
다다미의 가장자리에 쓰인 대문 고려연(다이몬 코라이베리)의 맞닿음
코라이베리의 아름다운 무늬들.. 바로 이것이 고대 고구려에서 전해진, 우리의 [잊혀진] 무늬들입니다!
헌데 고려라고 하는 것은 원래 일본에서 한반도를 지칭할 때 그냥 쓰이던 말로써, 특정 국가를 지칭할 수도 있고 한반도를 지칭하는
명사일 수도 있습니다. 이 무늬가 한반도에서 전해진 것은 분명한데 누구에 의해, 어느 나라에 의해 전해진 것인지 알 수 있는 기록이
없어 고구려인지, 백제인지, 아니면 중세의 고려인지 현재로서는 상고할 도리가 없음이 아쉬울 뿐입니다.
다만 고구려가 유력하다고 한 것은 고려란 것이 고구려를 지칭하기도 하고 10c에 건국된 고려는 일본과 교류가 삼국시대 고구려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데다(사신 파견 횟수만 봐도) 고구려의 담징같은 승려와 이리지伊利之같은 고구려인 사절단도 활발히 교류한 흔적이 보여서
아마 고구려에 의해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고대에 우리나라도 일본과 같은 타타미, 즉 깔개, 거적 등이 분명히 있었을테고, 그 가장자리를 장식하는데 이 무늬가 쓰였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이야 타타미가 일본 고유의 문화로 인정받지만 워낙에 도래인들이 일본에 전한 문물이 많아서 혹시 이것도 그렇진 않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인 것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일 뿐이지요.
코라이베리가 쓰인 다양한 다다미 제품들
다양한 코라이베리 (맨 오른쪽 세로줄 무늬는 운겐베리라고 다른 무늬고 코라이베리아님)
참고: 황족만이 쓸 수 있었던 운겐베리
원래 이 운겐베리는 천황과 황후, 상황, 법황 등 황족과 사찰의 불상만이 쓸 수 있었는데 무사들에 의한 정권인 쇼군 막부가 들어서면서
공가와 황가의 권력이 축소되고 위세가 땅에 떨어짐에따라 막부의 쇼군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쓰게 됩니다. 무로마치 시대의 규제가
아무 소용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천황 주제에] 감히 막부에게 대들어?! 대충 이런 상황이...)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들 초상화입니다. 밑에 보시면 형형색색의 운겐베리가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황가 직계 일족]만이 쓸 수 있는 최상의 고급무늬임에도 무사가 말이지요! 물론 도쿠가와 씨가 황족인 세이와겐지의 일파임을 내세웠긴 합니다만....
일본 최후의 사무라이 막부 정권인 도쿠가와 막부의 창시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초상화, 그가 깔고 있는 다다미의 마감이 바로 운겐베리입니다.
아예 대놓고 쓴 것이지요.
도쿠가와 막부 뿐 아니라 오래 전부터 황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대로 떨어진지라.. 이것은 아시카가 막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상.
운겐베리가 뚜렷이 보입니다. 그만큼 권력자들이 탐내던 황제의 권위에 버금가는 무늬였다는 셈이지요.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분수에 맞게? 코라이베리를 사용했는데... 오다 노부나가 초상의 저 문양이 바로 '한반도에서 전해진 무늬']
였다는 점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오다 노부나가가 알고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위에 소개해드린 무로마치 시대에 제정된 규칙에 보면 대문고려연(다이몬코라이베리)은
친왕, 섭관가, 대신 계급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데 노부나가가 받은 관직이 '정이위 우대신(우다이진)'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반열에 올라
자격이 되므로 대신들만이 쓸 수 있던 바로 저 다이몬코라이베리를 사용한 다다미에 오를 수 있던 것이지요.
아무튼 노부나가의 초상화에 그려진 게 고려연이었다니.. 한반도에서 전해진 무늬였다니!
일본어 전공, 일본사, 센고쿠지다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엄청나군요.
노부나가의 초상화에 그려진 게 고려무늬였다는 출처: news.nicovideo.jp/watch/nw4939330
[大紋高麗縁の畳に座る『資本著色織田信長像』狩野元秀画、長興寺蔵/Wikipediaより]
정확히는 대문고려연, 다이몬코라이베리였군요. '코리아'베리가 아닙니다;; 블루베리 아사이베리 할 때 그 베리도 아닙니다;;;
이 분은 처음보는데 잘 알려져있진 않지만 오다 노부나가가 '대문'이었다면 여기는 '소문 고려연'을 사용한 초상화라 넣어봄.
小紋高麗縁の畳に座る『冷泉為秀像』土佐光芳画/Wikipediaより, 冷泉為秀레이제이 타메히데라는 14c 공경(문과 귀족)
대문고려연!
소문고려연!
무라시키베리, 자연紫緣, 이것도 종4,5위 관리들만이 사용할 수 있던 베리입니다.
키베리, 황연黃緣, 지하, 즉 어전 아래의 바닥에 서서 대기할 수 있던, 황궁에는 출입 가능한 관리들이 사용하던 베리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아름다운 고려연, 코라이베리들을 마지막으로..
일본 여행 규제 끝나면 가실 분들 많으실텐데 저는 돈이 없어서..ㅠㅠ 교토 관광, 그 중에서도 특히 교토고쇼(황궁)를 방문하실 분들은
꼭 토라노마, 츠루노마, 사쿠라노마의 이 문양들을 확인해보세요! (바닥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바닥에 까는 깔개 문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 우리만의 전통적이고 아름다운 '화문석'이라는 훌륭한 문화유산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니까 관심을 좀...
화문석 제조의 험난한 과정, 하나하나가 전통방식으로 제작되어 생고생이므로 장인들에 대한 대우를 더욱 높여야합니다.
명품 강화 화문석
물론 고려의 문양, 코라이베리가 쓰인 일본의 다다미와는 완전히 다른 물건이지요.
그렇다면 대체 코라이베리는 어디에 쓰인 무늬였을런지... 아마 다다미같은 고대의 깔개, 거적같은 류가 분명히 있었을텐데 한반도의 기후,
생활습관 등 뭔가 대체될만한 요인이 있었을 겁니다. 뭔가 사라지고 생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거든요. 그게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뭐 돗자리 비슷한 화문석말고도 조선시대엔 이런 것도 쓰였지요. 바로 카페트 비슷한 조선철朝鮮綴
근데 조선에서 만든 카페트인데 거의 다 일본에 가있습니다.. 조선카페트도 일본에 있다니! ㅠㅠ
이건 신라카페트인데 이것도 일본에 ㅠㅠ 일본 정창원(쇼소인) 소장 신라 모전毛氈
양탄자의 일종인데 이미 천년 전 고대 신라인들이 이런 걸 깔고 지냈습니다. 일본이 다다미도 없을 때..
진골 성골 귀족들이 페르시아에서 전래된 양탄자를 깔고 다녔다고 생각해보세요. 후후
고대 삼한! 맨날 조선만 복원하지말고 고대 삼한도 좀...ㅠㅠ 골프장만 가득하니 지방은 볼 것없다는 관광객들의 푸념이....
고구려..
백제..
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forebs&categoryNo=10 일러스트 출처, East Moon님 블로그
북방대초원을 호령하던 고대 고구려인의 숭무崇武정신! 그 기상은 다 어디로 갔는가..
武士としては...何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それが問題だ!
저는 삼한마니아입니다. 고대인의 숨결을 잘 느끼셨나요? 감사합니다. 꾸벅
참고로 [쇼토쿠 태자]라는 일본사극드라마인데 4~6c 백제와 왜의 관계인 거 같은데 당대 왜국은 물론이고 백제의 복식을 거의 완벽하게 고증해낸 것으로 보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 백제의 관리들은 옷에 아주 화려한 무늬를 수놓고 있지요.
이것을 당시 야마토(왜국)인들이 흡수하여 일본만의 독자적 의복문화를 발전시켜 에도 시대의 그 가몬들이 새겨진 옷들로 발전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래인이 한둘이 아님
쿠니무라 준(곡성에 나온 그 일본 배우)
한국 드라마는 고증은 뭐 기대도 안하고.. [만들어나 줬으면...ㅠㅠ] 돈이 안되니 아예 제작 자체가...
삼한을 찾으려면 건축물도 그렇고 일본을 더 많이 가서 찾아야하는.. 고대 한반도의 향기는 일본에 더...
참고로 이 드라마에 설경구 씨 나옵니다.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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