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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항해시대의 향신료는 대체 얼마나 비쌌던 것일까? - 금 시세를 기준으로

-서론.

 

대항해시대는 유럽인들의 후추와 같은 향신료에 대한 갈망, 그들의 주식이었던 '육류'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하는

바로 그 후추를 얻기 위한 욕망에서 시작되었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물론 이렇게 알려진 대로 후추를 비롯한 이러한 향신료는 명백한 대항해시대를 촉발한 '기폭제'였다.

향신료를 유럽으로 가져오기 위한 유럽인들의 목숨을 건 항해는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다.

또한 그러한 생사를 넘나드는 항해 끝에 유럽 땅에 도착한 후추와 같은 '동양의 향신료'는 유럽에서 엄청난 값어치를

지녔다는 것 또한 널리 알려진 통설일 것이다.

그러나 대항해시대를 다룬 대중적인 개론서나 학술 연구를 보면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들이 당시 유럽에서

대체 얼만큼의 가치를 지녔는지, 매각가는 얼마였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왔다.

'금보다 비싼 후추를 위해 유럽인들은..', '당시 유럽에서 향신료는 귀족들의 사치품이었다..'와 같은 단편적인 서술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한 아쉬움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학문적 궁금증에서 '대체 당시 유럽에서 그 향신료들의 가치는 정확히 얼마였나?'

라는 질문 하에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1. 후추

 

 

가장 먼저 살펴볼 '향신료'는 역시 대항해시대의 대표적인 향신료, 후추일 것이다.

후추는 대항해시대의 선발주자인 포르투갈 인들이 가장 먼저 희망봉을 돌아 당시 후추의 산지로 알려져있던 인도로 가기위한

험난한 여정을 출발하게 만든 대표적인 향신료였다. 바로 그 후추의 가격은 대항해시대 당시 유럽에서 어느 정도의 가격으로 팔렸을까.

 

<사진 1. MBC에서 방영한 MBC스페셜 ‘스파이스 루트’의 캡쳐 장면, 2008>

 

MBC에서 지난 2008년 이와 관련한 주제로 방영한 흥미로운 다큐가 방송된 적이 있었다.

제작진은 당시 유럽에서의 후추 매각가를 살펴보기 위해 직접 이탈리아 현지로 날아가 15c 중세시대의 양피지 문서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한다.

 

<후추 한상자는 170 Ducato(두캇), 당시 결혼지참금은 15 Ducato, 여자노예는 50 Ducato> 1).

 

여기서 'Ducato'란 15c에서 19c까지 유럽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었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베네치아가 대표적)들의

기준통화와 같은 화폐였다. 지금의 '달러$'와 같은 위상을 지닌 것이었다.

 

 

 

<1400년대 베네치아에서 제작된 Ducato, 두카토는 이탈리아를 시초로 전 유럽에서 널리 통용되었다.>

 

그렇다면 이 '두카토'의 가치는 현재 화폐가치로 따지면 과연 얼마일까.

 

ㅁ 세계사에도 등장하는 피렌체의 메디치. 1453 년 당시 메디치의 재산은 20 만 두캇.
ㅁ 1500 년, 지중해 최강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베네치아의 국고 수입은 연간 115 만 두캇.
ㅁ 1423 년의 베네치아의 수출 및 수입의 규모는 각기 1,000 만 두캇.
ㅁ 1423 년 당시, 베네치아에서 집세를 제외한 연간 생활비는 15~20 두캇.
ㅁ 15세기 중반 무렵, 유럽인들이 넉넉하고 여유있는 성지 순례를 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150 두캇.

<목록1.>

 

필자가 즐겨하는 게임인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인벤에서 작성된 흥미로운 글을 바탕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포르투갈과 스페인같은 이베리아의 국가들로 인한 대항해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유럽의 무역 중심이었던

이탈리아에서의 두카토의 가치를 알려주는 자료이다. 이 자료의 마지막 성지순례 항목을 보면 1 두카토의 가치가

얼마나 높았었는지 예상할 수 있다.

 

※필자 주. 여기서 메디치 가문의 재산, 베네치아의 국고 수입 등 각종 수치는 원문 작성자가 밝힌 대로 시오노 나나미의'바다의 도시 이야기'라고 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악명을 들어서인지 자료의 신빙성엔 조금 의문이 들지만

해당 저서를 읽은 독자분의 제보를 기대할 뿐이다.

또한 연세대 김상근 교수의 저 '마키아벨리: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에 따르면 마키아벨리의 염려 에도 불구하고 교황 클레멘트 7세는 적국과 휴전협정을 맺어...중략...코냑동맹의 군대를 해산하는 동시에 100만 두카토가 넘는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라는 언급을 보았을 때, 그리고 전쟁배상금은 보통 현대적으로

수백에서 수천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요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100만 두캇은 최소 수백억, 많게는 수천억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1-1.)

독일의 경우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배상한 금액은 무려 1320억 마르크였다. 

ㅁ 두캇은 3.56 그램에 순도 0.997 로 24K (즉 순금) 금이 사용되었다. 2-2.)
ㅁ 두캇 발행 이후 베네치아가 망하는 500 년 뒤까지 순도는 변하지 않았다.
ㅁ 1328 년, 1 두캇 = 24 대은화(그로소) 로 고정되었다.
ㅁ 즉 금 3.56 그램 = 은 52.32 그램 으로 가치가 고정된 것이다.

<목록 2.>

 

1 두카토의 금화에는 순도 97~98%의 순금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당시 베네치아의 두카토 금화는

베네치아가 망하기 직전까지 높은 순도를 유지하여 중세 유럽의 화폐로써 손색이 없는 '신뢰할 만한 통화'였다.

이 1 두카토에 사용된 금의 가치를 비교해본다면 당시 두카토로 거래했던 후추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ㅁ 순금 1 돈의 국내 가격은 261,000 원(2019년 현재 국내 시세로 원문수정)
ㅁ 1 온스의 국제 거래 가격은 미국 달러 기준으로 436 달러 (443,000 원 정도, ※필자 주 2005년 기준)
ㅁ 1 돈은 3.75 그램, 1 온스는 31.1035 그램이다.
ㅁ 국제 시세와 국내 시세에서 약간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는 운송료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목록 3.>

'후추 1상자의 가격 170D × 261,000\(대략 3.5g의 1 Ducato의 값어치) = 44,370,000 \'

(링크: 한국표준금거래소 순도 999.9%의 1 돈의 골드바 시세 281,000\ 기준)

 

 

<99%의 순금 1 돈(3.75g), 출처: 한국표준금거래소>

 

즉, 후추 한 상자는 현 가치로 무려 4437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값에 거래됐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고려할 것은 '당시 후추 한 상자가 몇 Kg이었는지', 거래된 후추가 '상등품'이었는지, 아니면 '중, 하등품'의 후추였는지 등의 변수는 조사 상의 한계로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으나

그런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당대의 후추가 아주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는 결론은 충분히 도출될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된다.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녔던 '순도높은' 베네치아의 Ducato>

※사진의 금화는 두카토가 아닌 예시

 

https://www.pinterest.com.mx/pin/83879611794838294/?amp_client_id=CLIENT_ID(_)&mweb_unauth_id={{default.session}}&from_amp_pin_page=true

 

<또한 중세의 후추는 약용으로도 사용되었다. 

중세에는 이러한 '약제 향신료'와 약을 파는 곳과 상인을 약제상Apothecary라고 불렀다. 약제상에서 거래하는 중세인들>

 

14세기 베네치아에서 향신료의 가격은 아시아보다 40배 정도 높았다. 사프란 500g은 말 한 마리의 가격이었고, 생강 500g은 양 한 마리, 메이스 1kg은 젖소 한 마리에 해당하였다. 후추는 한 알로 거래되었고 세금이나 집세를 낼 때 화폐로 사용하기도 했다. 후추 한 줌은 황소 반마리 또는 양 한 마리의 값어치였다.2)

사프란은 전통적인 유럽의 향신료였고(유럽에도 고급 향신료가 분명히 존재했다.), 메이스는 육두구의 씨앗의 껍질을

말려 가루로 빻은 것이고, 육두구는 육두구 씨앗 자체를 빻아 가루로 낸 향신료이다.

 

 

<후추는 이처럼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향신료였던 것이다.>

 

이상으로 대항해시대 당시 후추의 가격을 알아보았으며, 이후 후추의 역사에 관해 간략한 역사를 논하면,

이후 1600년대가 되어 네덜란드가 황금시대를 맞게 되자 동인도회사(VOC)등을 통한 대량의 후추 수입, 인도가 원산지였던

후추의 생산지가 세계 각지로 퍼지면서 후추의 가격은 폭락한다. 이후 17c가 되면 후추는 귀족들의 사치품에서

일반인들도 여전히 비싼 가격이긴 하지만 유럽 각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중적인 상품이 되어간다.

 

2. 육두구와 메이스

 

후추와 더불어 대항해시대, 유럽인들이 가장 원했던 다른 향신료라면 역시 '육두구'를 손꼽지 않을 수 없다.

육두구는 영어로 Nutmeg이라고 불리는 나무열매를 말하며, 원래는 인도네시아의 몰루카 제도의 극히 한정된 섬 몇 군데에서만 나는

아주 귀한 향신료였다. 이 육두구의 경우 이미 '로마' 시대 때부터 유럽에 알려졌었던 후추와는 달리

(로마를 약탈한 서고트족의 알라리크 1세의 경우 로마 시에서 철수하는 댓가로 후추 수 천 파운드를 요구했다! AD 410.) 

3) 

고대 아랍인과 중국인들 사이에선 널리 알려졌지만 당대 유럽인들에게 육두구는 이슬람 상인들로부터 전설로만

전해듣던 '신비의 동양 향신료'였었다.

 

 

<이것이 '육두구' 열매이다. 육두구는 어느 향신료나 마찬가지겠지만 현재도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향신료이다.>

 

육두구에서는 2가지 향신료가 나오는데, 육두구의 저 열매 자체를 분쇄하여 가루로 낸 향신료(Nutmeg)와

육두구를 둘러싼 빨간 껍질을 분쇄한 메이스(Mace)라는 향신료가 그것이다.

 

 

http://m.inven.co.kr/webzine/wznews.php?site=dho&p=2&idx=97523

<대항해시대 온라인 속의 육두구와 메이스, 속칭 '육메'>

 

각각의 이 향신료는 유럽에서 후추의 가격 하락 이후 후추의 왕좌를 물려받은 향신료의 제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후추와는 다른 독특한 향을 내는 육두구는 유럽인들의 요리와 만나 아주 잘 어울리는 풍미를 만들어 내 후추의

대중화에 또다른 특별한 향신료를 찾던 유럽 부르주아, 귀족들의 구미에 맞아 떨어져 그들의 부를 과시할 만한 

새로운 사치품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에서 그렇게 '귀중했던' 육두구의 값어치는 대략 어느 정도였을까.

 

그리고 그당시 세빌리아(대항해시대의 세비아) 에서 거래되는 향신료의 가격은

샤프란 500g 에 말 한마리 ,

생강 500g은 양 한마리

후추는 한알씩 거래되었는데 세금이나 집세를 낼때 화폐로 통용되었다

후추 80g 은 소 반마리 혹은 양한마리 ( 즉 500g 은 소 3.2마리)

메이스 500g 은 젖소 한마리

육두구 500g은 황소 7마리 였다

'The Spice And Herb Bible' 저자 Hemphill, Ian/ Hemphill, Kate (CON) l Firefly Books Ltd l

2007. 02.26

발췌 4)

<'The Spice And Herb Bible', Ian Hemphill & Kate Hemphill, Firefly Books>

 

위의 '황소 7마리..' 자료는 14세기(1393) 독일에서 거래된 육두구의 가격에 기초한 자료이다.

 

'ein Pfund Muskat-Nüsse, den Gegenwert von etwa sieben Ochsen, zu kaufen.

육두구 450 그램을 구매하기 위해선 7마리의 살찐 황소를 필요로 했다.' 5)

※ 'ein Pfund(one Pound)'는 독일의 계량 단위로 대략 450g이었다. 필자 주

 

 

<육두구 열매, 이것은 '향신료 육두구'가 된다.>

 

 

<육두구 열매에서 '빨간 껍질'을 떼어낸 것, 이것은 '향신료 메이스'가 된다.>

 

 

<건조 중인 육두구 열매>

 

 

<'신이 내려준 선물', 육두구 열매가 열리는 육두구 나무>

 

이상의 이미지 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Myristica_fragrans

 

 

<육두구와 메이스의 대표적인 산지였던 인도네시아 반다 열도의 'Run 섬(맨 왼쪽)>

 

당시 유럽의 하층민이라도 '신비의 동양 향신료' 한 웅큼만 쥐어올 수 있다면 큰 돈을 벌 수 있었고,

재수좋게 대량의 향신료를 손에 넣은 자는 인생역전까지 가능한 것이 바로 육두구라는 향신료였다.

그러한 꿈의 향신료, 육두구는 인도네시아의 극히 제한된 향신료 섬에서만 재배되었기 때문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Amboyna_massacre

<그리고 이 '신의 향신료'를 얻기 위해 네덜란드 인들과 잉글랜드 인들은 수 세기 동안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는 '학살'도 자행되었다. 사진은 1632년 발생한 '암보이나 학살'>

 

 

<위의 'Run 섬'과 더불어 17c 당시 전세계에서 유이有二하게 육두구와 메이스가 산출되었던 Ambon 섬, 중앙왼쪽>

 

3. 설탕

 

<다양한 종류의 설탕들>

 

비록 설탕은 향신료는 아니지만, 대항해시대에 있어 향신료와 맞먹는 가치를 지닌 대표적인 상품이었다.

설탕도 향신료와 함께 대항해시대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품이었으나, 향신료가 아닌 관계로 짧게 언급만 하자면

'아메리카에 사탕수수가 심어진 뒤에도 16세기까지 유럽에서 설탕은 사치품으로 남아 있어 설탕은 아주 귀한 의약품이나 향신료로 여겨졌다. 왕은 식탁 위에 설탕 사발을 올려놓는 것으로써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4파운드(1.5kg)의 설탕으로 송아지 한 마리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6)

 

※필자 주.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송아지 1마리의 가격은 대략 360여만 원이다. 만약 젖소 송아지라면 그 가격은 수 배로 뛴다.

 

 

'대항해시대'는 과연 낭만이 가득한 시대였을까.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Vasco_da_Gama_perante_o_Samorim_de_Calecute.png

'Deus vos guarde!'

주님께서 그대들을 보호하시기를!

 

<캘리컷(현 인도 케랄라 주 Kozhikod)에 도착한 바스코 다 가마와 현지 영주, 

금과 향신료, 그리고 동방의 낙원 프레스터 조안의 기독교 왕국을 찾아 오스만이 지키고 있는 레반트를 우회해 

인도까지 항해한 포르투갈 인들에 의해 대항해시대는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결국 '제국주의'로 이어지게 되는데...>

 

1)

MBC '스파이스 루트', 2008

'제작진은 이탈리아의 15세기 문서고를 찾아가 중세시대에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가 거래되던 시기의 가격표를 찾아, 당시 향신료의 가치를 확인해보았다. 

출처 :http://www.imbc.com/broad/tv/culture/spdocu/oldvil/1718401_13948.html'

 

1-1)

마키아벨리: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김상근 저, 연세대학교, 2013

https://dbr.donga.com/article/view/1303/article_no/5627 동아비즈니스리뷰에서 발췌

 

<사진 1.>

MBC 동 다큐 캡쳐

 

<목록 1,2,3. ※2005년 시세에서 2019년 현재 시세로 임의 수정>

http://www.inven.co.kr/board/dho/486/26, 작성자 'LuPin', 대항해시대 온라인 인벤, 2005

 

2)

이영미,『향신료』, 김영사, 2004. 1차 인용,'

서양의 눈동자, '오리엔탈리즘'의 역사 향신료의 역사를 통해 본 동양의 이미지 변천사', 박신형, 2008 논문에서 재인용

 

2-2.)

'두카토의 중량(그램)은 국가 별로 다양했다. 베네치아의 경우 보통 3.5~6그램,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의

두캇도 비슷한 3g 대의 무게였다.'

(The Venetian ducat contained 3.545 grams of 99.47% fine gold, the highest purity medieval metallurgy could produce.)

The Oxford Encyclopaedia of Economic History, page 112

3)

J. Norwich, Byzantium: The Early Centuries, p.134, 1989

 

4)

http://www.inven.co.kr/board/dho/486/582 작성자 '캥거루', 대항해시대 온라인 인벤, 2009

 

5)

Zimtzicken, Canehlpuper und andere MerkwürZigkeiten, Georg Schulz, 2003

 

6)

설탕과 권력, 시드니 민츠 저 김문호 역, 1998,

 설탕의 세계사, 가와기타 미노루 저/ 장미화 역, 2003

설탕, 세계를 바꾸다, 마크 애론슨 , 마리나 부드호스 저, 설배환 역, 2013

 

참고하면 좋은 자료)

주경철, 『대항해 시대』2008, 『문화로 읽는 세계사』2005,『향신료』아니 위베르, 창해 2001,

『향신료』이영미, 김영사, 2004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