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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에도 성 주위에 있던 다이묘들의 저택 가몬 지도

일본 도쿠가와 막부 치하 에도 성 주위에 있던 다이묘들의 저택을 가몬으로 표시해 본 지도입니다.

도쿠가와 막부는 다이묘들을 견제하고 그들을 감시, 통제하기 위해 산킨코다이(参勤交代, 참근교대)라는 제도를 통해 일본 전역의 다이묘들을 에도에

인질로 붙잡아두는 제도를 시행했지요. 그렇게 에도로 올라온 다이묘들이 거주하는 저택들은 지금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들의 저택이

어디어디에 있었나 문득 궁금해져서 찾아보게되었습니다.

 

 

<산킨코다이를 위해 에도로 상경하는 지방 다이묘의 행렬>

 

우리나라에도 신라의 상수리제도, 고려의 기인제도 등 지방의 유력호족들을 통제하고 묶어두기위한 제도가 있었지만 고려와 조선이라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모두 사라졌지요. 그러나 일본은 지방 다이묘들이 불과 200년 전까지만해도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러한 외국의 역사적인 사실에 바탕을 둔 사실이 흥미롭게 보이는 것입니다.

 

특히 일본은 서양과 흡사한 이런 지방분권적 봉건제의 유산이 많이 남아있어 특히 흥미로운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신라와 고려 조까지만해도 우리나라 전체에 이런 성주, 호족들이 참 많이 있어 지방마다 독특한 이야깃거리, 볼거리를 지닌 컨텐츠들이 많았을텐데 그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러나 봉건제도가 마냥 좋다고마는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잡설이 길었는데 이제 제가 조사한 '도쿠가와 막부 에도 성 주변의 다이묘들의 저택 가몬 지도'를 보시겠습니다.

 

<클릭으로 확대가능>

 

먼저 가운데 큼지막한 문장이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 아오이(葵규), 즉 아욱속 접시꽃의 문양입니다. 일본 최후의 막부라 아주 유명한 문장이지요. 일본마니아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왼쪽에 범례에 각 가문들의 번역명과 문장을 알아보시게끔 일일이 찾아서 넣었습니다. 일부 유명한 사무라이 가문(무가)의 문장은 어렵지않게 찾을 수 있었는데 몇 개는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또한 지도에 현장감을 높이기위해 다소 복잡하지만 실제 인공위성 지도를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설명을 해드리자면 왼쪽 도쿠가와 고산케徳川御三家가 있는데 각각 '오와리, 키슈, 미토 도쿠가와 가문'이 그것들로써 이 3가문들은 도쿠가와 쇼군 가의 지방 지배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 쇼군 가의 후손들을 일본 각 지방에 파견한데서 유래한 가문들입니다. 각각의 지명은 당시 일본의 지명을 딴 것으로써 오와리는 현재의 아이치 현 서부, 키슈는 와카야마 현, 미토는 이바라키 현 중북부에 위치해있던 번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이들 도쿠가와 고산케는 평소에는 그들이 맡은 영지를 다스리면서 지방 다이묘들을 감시하거나 중앙 쇼군가와의 교류하면서 일본 지배자로서의 결속을 다지면서 유사시 병력을 동원하거나 만약 쇼군 가의 혈통이 끊어지면 이들 가문에서 후계자를 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꽤 여러번 직계가 끊어져 이 고산케에서 쇼군들이 나왔지요.

 

이 지도에 나온 에도 성 주변의 무가武家(부케)들의 저택들은 각각 '상, 중, 하'라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면

'상옥부上屋敷, 중옥부中屋敷, 하옥부下屋敷'로 나뉘어집니다.

상옥부는 '카미야시키'라고 읽으며 지방 영지에서 올라온 다이묘들의 거주 저택으로 에도 성과 가장 밀접한 거리에 위치해있어서 '상'이라고 불렸으며 상중하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작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규모는 제일 작지만 '일국의 다이묘'가 거주하는 집이라 매우 호화스럽고 고급주택들이었고 다이묘가 상시 거주하는 시설이라 

집무실, 마굿간, 본국 영지와의 연락을 담당하는 시설 등 중요한 시설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명색이 다이묘들의 상시 거주처였던만큼 이렇게 어마어마했겠지요. 우리나라도 고려 개경이나 신라 경주에 지방에서 올라온 호족들의 대저택들이 즐비했었을 것은 당연했을텐데 말입니다.

 

http://blog.livedoor.jp/historymatome/archives/25773134.html

 

현재는 이 주택들은 완전히 사라져서 이곳이 '~~가문의 저택이었음'이라는 알림석만 남아있을 뿐이며 그 토지는 현 일본 중앙정부의 관청들, 국가소유지로 되었지요.

예를들어 일본에서 중앙정부의 별칭인 '카스미가세키'의 경우 후쿠오카 번 쿠로다 가문의 저택이 있던 곳이고 고산케 중 하나였던 오와리 도쿠가와의 카미야시키는 현 방위성이 들어서있지요.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가 다 몰수, 국유지화한 것입니다.

 

https://ko.foursquare.com/v/%E7%B1%B3%E6%B2%A2%E8%97%A9%E4%B8%8A%E6%9D%89%E5%AE%B6%E6%B1%9F%E6%88%B8%E8%97%A9%E9%82%B8%E8%B7%A1/502b4ec7e4b055c33f519fc8

<현재는 도쿄의 현대화 개발로 다 사라져 기념비만이 그 흔적을 알려주고 있을 뿐, 요네자와 번 우에스기 가문의 저택유적지>

 

중옥부는 '나카야시키'라고 읽으며 주로 상옥부에 거주하는 다이묘들의 자식들, 후계자들(인질)이나 은거영주들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다이묘가 영지로 귀환한 뒤 평소에는 가신들이 주재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나카야시키는 카미야시키에 비해 다소 밖에 있어 상옥부보다 규모가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옥부는 '시모야시키'라고 읽으며 이 저택들은 현재는 도쿄 중심이지만 당시로는 에도 성 외곽에 있어 정원으로 기능하거나 다이묘들의 사냥터로 쓰이는 등 장원 규모의 저택이었다고 추정됩니다. 수도로 인질로 올라온 다이묘들이 좁은 카미야시키에서 거주하다가 사냥이나 놀러가는 별장 정도로 쓰였음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에도 성 북쪽에 있던 다이묘들의 저택과 문장입니다. 도쿠가와 고산케의 저택이 4곳이나 되며 다른 영주들의 거처도 도쿠가와와 친한 관계에 있던 후다이다이묘譜代大名와 도쿠가와 고산케같은 쇼군가 그 자체인 신판다이묘(親藩大名, 방계)들의 거처가 에도 성과 가까이 있었음을 추정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래 보여드릴 에도 성 남쪽 지도에서도 보시겠지만 도쿠가와와 불편한 관계라 해도 무조건 외곽으로 강제로 내쫒은 것은 아닙니다. 그냥 믿을 수 있는 '가신'들부터 에도 성과 가까이 자리잡게 대우한 것일 뿐.

 

에도 성 남쪽입니다. 상대적으로 에도 성 북쪽보다는 훨씬 많은 저택들이 밀집해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개발이 많이 되어

인구도 많고 다이묘와 번, 쿠니(옛 지명)가 많던 일본 서남부의 다이묘들이 에도로 올라온 특성에서 비롯됩니다. 남서쪽에서 올라왔으므로 당연히 성 남쪽에..

 

흥미로운 것이  두 가지있는데 하나는 지도의 맨 오른쪽의 가문인 신판다이묘인 오와리 도쿠가와의 장옥부蔵屋敷라는 단 하나의 저택이 있ㄴ,는데 이 저택은 '쿠라야시키'라고 읽으며 그 정체는 '상업매장'과도 같은 업무를 수행하던 저택이었습니다. 즉, 오와리 지역의 쌀, 특산품같은 상품들이나 다른 다이묘들과 무역을 하던 상업거래소인 셈이지요. 다른 쿠라야시키가 더 많았는데 제가 참조한 범례에는 저 한곳만 나와있었는데 실제론 해운수송이 용이한 에도 만 오다이바 해안가를 주변으로 다른 다이묘 가문들도 많은 쿠라야시키를 세웠다고 합니다. 에도 뿐 아니라 오사카, 사카이, 나가사키. 나고야 등 일본 전역에 다이묘들의 상업거래소가 있었다고 하네요.

(번의 재정을 충당해야하니)

https://ja.wikipedia.org/wiki/%E8%94%B5%E5%B1%8B%E6%95%B7 '쿠라야시키 참조, 일본어'

 

그리고 맨 오른쪽 중간의 '키슈 도쿠가와 가의 하마야시키'라는 저택도 있는데 쿠라야시키와 더불어 범례에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써 하마야시키란 한자로 빈옥부浜屋敷라고 쓰며 물가浜의 저택이라는 이름답게 해안가에 위치해 있었으나 어떤 역할을 수행한 저택인지는 불명입니다. 

 

마지막으로 설명을 없애고 깔끔하게 문장들만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https://www.kurachic.jp/column/1703/ 범례를 참조한 사이트입니다. 일본인의 블로그인데 참고에 도움이 된 데에 대해 徳留康矩氏,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댓글비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