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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제국, 만사 무사'의 금은 어디서 온 것일까? - 말리의 금광

 

<엄청난 부를 가졌었다고 알려진 만사 무사>

 

아프리카 말리 제국의 황제였던 만사 무사와 말리 제국은 황금이 넘칠만큼 부유했던 왕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만사 무사의 이러한 재산을 탐구하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무사 황제가 소유한 금이 그렇게 많았다면, 과연 그 금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말리가 아프리카의 '엘도라도'였던 것인가?'

 

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만사 무사는 물론 그가 통치했던 '말리 제국'의 역사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그나마 알려진 무사의 이미지도 '엄청나게 부유했던 왕?', '빌게이츠보다 부자였다?'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그의 정확한 재산은 현재로써 추정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황금으로 유명한 그의 그 '황금'들이 어디서 온 것일까?

라는 의문은 충분히 던져볼 수 있음직하다고 판단하여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부자왕의 대명사, 만사 무사' 그가 보유했던 황금의 근원을 찾아보자.

 

 

 

<말리의 국기와 위치>

말리 - 채굴 & 광물

이것은 이 나라에 가장 유망한 산업 분야다. 2019년 7월 14일 발행

개요: 금은 말리의 천연자원 분야를 지배하고 있으며, 말리는 아프리카에서 네 번째 금 생산국(가나, 남아프리카, 수단)이다. 금은 말리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으로서 2018년에는 전체 수출의 64%와 정부 수입의 21%를 차지한다. 금값은 세계 시장가격에 따라 변동한다. 비생산적인 광산이 폐쇄되고 또 다른 광산이 곧 폐쇄될 위기에 직면하면서 이 부문은 몇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2017년 연간 14t의 용량을 갖춘 2개의 광산이 새로 문을 열었다. 2015년에 두 개의 작은 광산들이 문을 열었다. 금 패닝은 금 수출의 약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인구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2백만 명 이상이 광업 분야에 의존하고 있다. 3)

<미국 상무부 국제무역국에서 설명하는 말리의 광산업, 이렇게 아직도 말리에선 '금'이 풍부하게 생산된다.>

 

자원부국들이 즐비한 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말리는 가나, 남아공, 수단에 이어 금 생산국 4위에 해당하는

아주 많은 양의 금이 매장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황금의 황제' 만사 무사가 통치했던 말리 제국의 전설이 14세기 초이므로 무려 '7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말리는

여전히 금이 풍부한 '엘도라도'인 것이다.

 

출처

<만사 무사 이후로 700여 년 동안이나 채굴되었어도 아직도 아프리카의 금 생산량 4위를 차지할만큼 매장량이 풍부한 말리,

아프리카에서도 남아공, 탄자니아, 가나 등 내로라하는 금 생산국과 함께 강조되어있다.> 

 

말리는 또한 다른 광물 전망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 영토의 대부분이 아직 탐사되지 않았고 지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리)광산부는 금괴 deposit 800t, 철광석 200만t, 우라늄 5000t, 망간 2000만t, 리튬 400만t, 석회석 1000만t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말리는 이미 694,000개의 착취 가능한 매장량이 발견되어 2020년까지 리튬 생산을 시작할 것이다.3)

말리에는 아직도 열악한 인프라 사정과 사막이 대부분인 거친 국토로 인해 아직도 탐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실정이다.

이렇듯 탐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곳인 말리에 지금까지 확인된 매장량을 기준으로 추정해도 금광이 '800t'이나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자원광물들의 매장량도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낯선 나라, '말리'는 이처럼

자원의 보고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국토가 사바나, 혹은 사막 지대인 말리, 북부는 아예 사하라 사막이다.>

 

출처

<말리의 수출품 현황, 2012년 기준으로 금이 무려 21%을 차지한다.>

 

 

<14c 말리 제국의 무역로, 사하라를 종단하여 북아프리카와 이집트 등으로 무역로가 개설되어있었다.>

 

출처

<말리에 위치해있던 또다른 제국, Songhai 제국의 무역로, 이 일대의 무역중심지는 가오(Gao)와 팀북투(Timbuktu)였으며

이 도시들을 중심으로 금과 소금, 동, 면제품과 노예들까지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진 것이다.>

 

출처

<사하라를 가로질러 팀북투로 향하는 베르베르Berber 캐러밴(낙타상) 상상화, 1853>

Berber Trade with Timbuktu 1300s, 19c

 

 

<가나 아샨티 왕국 전사들의 황금 장신구, 가나의 아샨티도 말리 제국과 금을 교역, 혹은 직접 채굴하였다.>

 

 

silla?! 과연 황금의 나라 'silla'..

<서아프리카 말리 제국과 가나 제국을 돌며 그들의 무역에 관한 중요한 기록을 남긴 무슬림 상인, Al-Bakri와 그의 여정>

 

 가나 경제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는 알 바크리라는 무슬림 상인의 기록에서 나온다.알 바크리는 상인들이 소금 수입에 대해 디나르 금화를 세금으로 1개, 소금 수출 시에 2개씩 내야 했다고 기록했다. 다른 제품들은 고정회비를 지불했고, 알 바크리는 구리와 "기타 상품" 모두를 언급했다. 아마도 수입품에는 직물, 장식품, 기타 재료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옛 모로코에서 발견되는 수공예 가죽제품의 상당수도 제국에서 유래되었다. 무역의 중심지는 Koumbi Saleh라는 도시였는데 (말리 제국의) 왕은 자신의 왕국 안의 모든 금 덩어리를 자기 소유라고 주장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금가루만 갖게 했다. 국왕이 지방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외에 여러 지류 국가와 추장국으로부터 제국의 변방에 대한 공물도 받았다.

...중략...

 한때 와가두라는 이름이 붙었던 가나 왕국은 현재의 모리타니아와 서부 말리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가나 왕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부유한 왕국이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사하라 횡단 무역이었다. 가나 왕국은 매우 인구밀도가 높았고 가나 왕국의 사람들과 교역하거나 다른 외부 사람들과 교역을 하기 위해 왕국 밖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면서 가나를 무역 센터로 만들었다. 가나 내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들 중 일부는 소금과 금이었다. 금과 소금이 가나를 통해 운반되고 거래되면서 가나 왕국은 무역 센터를 통해 들어오는 상품에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매우 부유해질 수 있었다. 가나에서 거래되는 다른 재료로는 상아, 노예, 말, 칼, 향신료, 비단, 그리고 심지어 유럽인들의 책도 있었다. 가나는 대규모의 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자신과 그들의 상품을 보호하기 위해 거래할 때 그들이 원한다면,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호비를 청구할 것이다. 가나가 잘 보호되고 있는 무역로가 많다는 사실 또한 다른 상인들이 가나로 와서 무역을 하도록 고무시켰다. 무역로에 대한 보호의 양과 많은 수의 무역 루트가 생겨남으로써, 가나에는 The Gold Coast라는 별명이 붙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나를 통해 무역을 하기 때문에 가나는 본질적으로 생각, 문화, 기술 그리고 다른 사회들을 그들이 있는 그대로 만드는 것에 대한 다른 측면들을 퍼뜨리는 용광로였다. 결국 가나 왕국은 몰락했다; 권력의 쇠퇴. 가나는 가나가 소유한 자원을 필요로 하는 다른 지역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가나 왕국은 결국 말리와 합병했고 말리는 아프리카 역사상 가장 큰 제국 중 하나가 되었고 가장 부유한 제국 중 하나가 되었다. 4)

<즉, 말리의 왕은 자신의 제국에서 나는 금을 포함한 모든 교역품에 세금을 부과했고(왕토사상), 이는 말리 제국과

인근의 가나 제국에게 큰 부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또한 사하라를 통과한 후 말리 제국의 팀북투와

가오 시에 상인들을 위한 휴게시설 및 거래시장이 개설되면서 말리 제국은 이렇게 큰 번영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말리와 서아프리카의 '금'들이 더 남쪽인 가나 해안의 항구도시들에 도착하면서, '그토록 황금을 찾아헤매던

유럽인'들의 눈에 띄게 되어 가나가 그 유명한 '황금해안'의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금 무역으로 유명한 대항해시대 온라인의 아비장과 세인트 조지스 항구..)

 

 

<아랍 캐러밴Caravan들은 오늘날에도 사하라를 가로 지르는 것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File:Caravane_hoggar1.jpg

※Hoggar는 알제리의 산맥

 

그렇다면 현재 말리의 추정 매장량이 아닌 금 생산량은 얼마나 될까.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말리의 금 생산량은 2016년 기준으로 50.6톤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볼 땐 미미한 수치지만

아프리카에선 손 꼽히는 금 매장국가인 것이다. 5)

 

출처

<주로 말리 서부, 세네갈과 기니 국경 지대에 밀집해있는 말리의 금광들>

 

<말리 서부 금광 지대의 모습, 고대로부터 이곳은 황금의 나라 말리 제국, 그 제국의 부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Yatela, Sadiola 광산지대>

 

<Sadiola 광산>

<Yatela 광산>

<말리의 현존하는 채굴 금광, Loulo-Gounkoto 금광 지역, 이 금맥에선 오늘날에도 금 채굴이 진행중이다.>

 

<채굴중인 Loulo 금광>

 

출처

<또다른 말리의 금광, Morila 금광>

 

출처

<말리의 금 매장량,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교해도 상당한 양임을 알 수 있다.>

 

출처

<위의 말리 Loulo 금광단지에서 채굴한 금으로 만든 금괴, 금괴에 쓰여진 'BARRICK'은 해당 금광에서 채굴 중인 회사의 명칭이다.>

 

출처

<말리의 금광에서 채굴 중인 작업자들, 오늘날에는 백인들이 말리의 금을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채굴자는 현지인, 수혜자는 백인..

'Francafrique'는 여전한 것인가... 지배자의 피부색은 바꼈으나 말리의 민중에게 돌아갈 금 채굴로 인한 혜택은 700여 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일까.>

 

 

출처

<말리의 최대 금광인 Loulo 금맥의 채굴권을 따낸 'BARRICK'사는 '캐나다'에 본사를 둔 기업이다.>

 

 

 

출처

<말리 서부의 풍부한 금맥지대, 바로 이 일대가 '만사 무사'의 부의 원천이자, 말리 제국의 황금이 나오던

14세기 '유럽인들이 황금을 찾아 목숨을 건 항해를 시작하게 된 초기 대항해시대의 'El Dorado'였던 것이다!>

출처

<14c, 만사 무사 통치 시기의 '말리 제국'>

 

출처

 

<황금이 넘쳐날 정도로 번성했던 제국의 수도 팀북투>

 

 

<'황제' 무사를 기념한 말리의 금화>

 

<제국 황제 폐하...>

 

 

<말리의 사금 채취와 금 원석>

 

 

<오늘날에도 말리의 경제를 지탱하는 '금' 바로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왕, 만사 무사의 부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밑에는 여전히 가난에 허덕이는 '일반 말리국민'들이 대다수이다.

과연 언제가 되어야 축복받은 '아프리카의 El Dorado', 신의 축복이 그들에게까지 닿을까.>

 

 

<오늘날 말리는 옛 제국의 영화는 온데간데 없고 북부 분리주의 독립 단체와의 전쟁, 빈부격차 등으로 혼란한 국가이다.

말리는 과연 옛 대제국, 황금으로 가득했던 그 환상의 나라로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Palace of Mansa Musa>

 

1)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068958 JTBC 뉴스, 역사상 최고 부자는 말리 제국의 만사 무사, 하현옥 기자

 

3)

https://www.export.gov/article?id=Mali-Mining 미국 상무부 국제무역국The International Trade Administration (ITA), U.S. Department of Commerce, Mali - Mining & Minerals

 

4)

Chu, Daniel and Skinner, Elliot. A Glorious Age in Africa, 1st ed. Garden City, NY: Doubleday, 1965.,

al-Bakri in Levtzion and Hopkins, eds. and trans. Corpus, p. 81.

 

5)

https://www.reuters.com/article/mali-gold-idUSL5N1FV3FA